숫타니파타
3월 둘째주 책읽기 모임
‘피안에 이르는 길’
봄햇살이 윤슬처럼 도량을 감싸는 날.
초파일을 앞두고 빨강,파랑 연등 작업이 한창입니다.
극락전 뜨락의 오래된 느티나무 위로 두둥실 달려있는 연등을 보니
피안으로 가는 길이 저 곳일까 싶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식이 깊은 사람을 성자라고 합니까,
아니면 행적(行跡)이 뛰어난 사람을 성자라고 합니까?“
부처님 제자 난다가 스승께 묻습니다.
“난다여,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견해나 학문이나 지식을 가지고 성자라고 하지 않는다.
번뇌를 깨뜨려 고뇌가 없고 욕망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이여말로 성자라고 나는 말한다.”
집착을 깊이 살펴 그 본질을 깨닫고,
마음에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번뇌의 흐름을 건넌 사람들’ 이라고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는 시시로 일상의 순간 속에서 오욕(식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과
오감(시각,소리, 후각, 미각, 촉감)에 의해 무의식적 반응을 하며 삽니다.
그리고 반응하는 ‘나’를 ‘자아’라고 착각합니다.
이러한 삶은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이기 때문에 이기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응하는 ‘나’,
그것조차 내 감정의 집착임을 알아차린다면 반야심경에서 말하듯
‘오온이 공(空)’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 오온(색-물질, 수-감각, 상-인식, 행-의지, 식-마음작용)은
사대(地水火風)의 인연화합(시절인연)으로 잠시 이루어진 것일 뿐
실체가 없는 가아(假我)라고 합니다.
마치 자동차가 수만개의 부품이 모여 자동차라는 형상을 이루듯
본래 자동차라는 형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연화합으로 생긴 것은 본래 실체가 없이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욕과 오감의 집착에서 벗어나 참 본질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지금 몇 시입니까?” 하고 묻는 사람은 있어도
“시간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만
“내가 누구지?”하고는 묻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없을 것입니다.
하늘로 뻗어있는 나뭇가지에 두둥실 떠 있는 연등을 보니
줄맞춰 매달려있는 연등보다는 조금
자유로워 보입니다.
어쩌면 고정된 속세(집착)에서 살짝 벗어나
피안의 길로 들어서는 길이 무엇일까…
저들도 찾는 중인 것일까요?
<과거에 있었던 것(번뇌)을 지워 버리라.
미래에는 그대에게 아무 것도 없게 하라.
중간(현재)에도 아무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해지리라.>